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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통

알레그로(Allegrow)

  2009년부터 홍대 출입이 꽤 잦아졌다. 군전역 후 마음 둘 곳 없어 방황하던 나에게 공연은 하나의 빛이었다. 큰 공연장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일체감, 호흡, 느낌. 아무리 많아도 채 백명이 되지 않는 작은 라이브 클럽의 매력은 거기 있었다. 알레그로(Allegrow)라는 이름의 뮤지션을 알게 된 것도 이 시점이었다.


당시 공연 포스터

헤르쯔 아날로그는 지난해 여름, 알레그로는 지난달 데뷔했다

첫 발걸음부터 앨범까지 꽤나 오래 걸렸다

나머지 두 팀은 주름살이 생길 때쯤 나올지 모를 노릇이다



  12월 31일 홍대공간 '숲의 큐브릭'에선 새해 첫날을 맞이하는 작은 기념 공연이 있었다. 당시 싱글 앨범 하나 발매하지 않은 신인 아티스트들의 무대가 주를 이뤘다. (종내엔 새벽까지 술한잔 걸친 홍대 아티스트들의 밤샘 송년회가 이어졌지만.) 그날 내가 기억하는 알레그로는 작은 무대 위 건반 앞에서 굉장히 떨리는 목소리로 수줍게 노래 부르던 가수였다. 출연한 다른 세 팀에 비하면 몹시 수줍어했기에 그날의 장면이 나는 기억난다. 얼굴도 빨개졌던 것 같애.


  그리고 지난달 27일, 마침내 길고 긴 기다림 끝에 데뷔 Ep [Nuit Noire]가 발매되었다. 첫 공연으로부터 무려 2년 2개월만의 정식 데뷔니, 2010년 새로운 얼굴이 나이를 먹은 셈이다. 물론 중간에 두 장의 컴필레이션 [사랑의 단상 Chapter.3][파스텔뮤직 10주년] 앨범에 수록곡으로 참여하기도 했으나 정식 데뷔라기엔 손색이 있으니, 이번 앨범이 공식적인 첫 걸음이라 할만 하겠다. 



알레그로(Allegrow) Debut EP [Nuit Noire] Teaser ; PM 7:11 (Inst.)




Nuit Noire

아티스트
알레그로
타이틀곡
Urban Legend
발매
2013.02.27
앨범듣기


  클럽 드럭 이래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소위 인디라 칭해지는 음악 시장의 트렌드를 이끌었다. 지금도 다양한 음악색을 가지고 활동하는 밴드가 많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이자 성향은 보다 독창적이고 참신한 그들만의 음악 세계를 구성하려 노력한다는 점이다. 남들과는 다른, 자신들만의 색깔(ego) 찾기. 밴드 서바이벌이었던 KBS2 <TOP밴드> 예선만 봐도 정말 다양한 음악을 하는 많은 밴드를 볼 수 있지 않았는가.


  이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알레그로의 음악은 평범하다. 잔잔하다. 누구나 들어도 부담없이 편하게 귓가를 맴돈다. 눈에 띄게 특출나려 노력한 것 같지도 않다. 자기만의 색깔을 찾으려 노력하는 팀들의 음악에 비하면 그렇다. 이 앨범을 들으며 새삼 깨달은 점은, 이러한 '보통 감수성'이 근래 홍대씬의 아티스트들에게선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모두가 특별함을 좇는 사이 우리가 숨쉬는 보통의 감성은 뒤로 밀려나 있었나보다. 이 앨범을 들으며 이유없이 마음이 푸근해진 것은 아마도 그러한 감성을 다시 느꼈기 때문이리라.






  누구나 느끼는 그런 것. 그렇기에 당연하게, 너무도 자연스럽게 흘려버리는 그런 종류의 것. 알레그로의 음악의 '특수성'은 바로 누구나 쉽게 지나치는 '보통의 느낌'을 우리에게 선사한다는 점이다. 언니네이발관의 정규 5집 [가장 보통의 존재]가 앨범을 관통하는 주제- '보통의 존재'를 치밀하고 철저한 계산에 의해 촘촘히 짜맞추어 표현했다면, 알레그로의 앨범은 정반대의 방법으로 보통의 이야기 도시의 이야기를 선사한다. 듣는 이에게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았다. 그냥 들려주는 앨범이다. 반년을 채워가는 해외 생활 중 이 앨범을 들으며 나는 처음으로 푸근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화려하지 않은 옆집 형 같은 목소리가 달래주고 있었다. 오랜만에 나는 유행에 상관없이 꾸준히 오래 들을 수 있는 앨범을 발견했다.


  이 앨범이 보다 안정감있게 느껴지는 까닭은 수록된 8곡 중 처음과 중간, 끝에 각기 삽입된 연주곡(Inst.) 덕분일 것이다. 8곡의 많지 않은 트랙임에도 곡마다 독립된 서사가 느껴지는 건 앞에 배치된 연주곡들의 공일 것이다. 앨범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며 짧고 평범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드는 느낌이랄까. 특히 중간 5번 트랙 '우리가 스쳐온 서울 밤하늘엔'은 노래로 그리는 한장의 수채화다. 하늘은 도화지다. 이 짧은 연주곡을 듣고 있으면 한강 둔치에서 친구들과 밤새 밤하늘을 보며 시간을 보냈던 때가 떠오른다. 수줍은 기타톤이 비어있는 서울의 밤하늘을 한땀한땀 별이 되어 채워주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나는 특히 그의 보컬이 좋다. 감미롭진 않지만 따사롭고, 화려하지 않은 대신 포근하다. 무엇보다 언젠가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익숙함이 있다. 잠들기 전 동화를 읽어주는 누군가의 목소리처럼. 그러하다. 오늘은 이 앨범을 들으며 자야겠다.







알레그로(Allegrow, 이세훈, 가수)


EP [Nuit Noire] (2013)


*기타 수록곡

"어디쯤 있나요" [Ten Years After; Pastel Music 10th Anniversary] (2012)

"Love Today" [사랑의 단상 Chapter.3 Follow you, Follow me]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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