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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통

참깨와 솜사탕

  사실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는다. 2010년 말이었던 것도 같고, 2011년 초였던 것도 같다. 좀더 뒤져보면 자세한 일자를 알아볼 수도 있겠지만 큰 의미는 없고... 확실한 건 그 때가 꽤나 추운 겨울이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멤버 중 한명이 꽤 두꺼운 검정 패딩을 입고 있던 게 기억나거든.


  홍대입구 8번 출구 (당시에는 4번 출구였다 세븐스프링스 앞에 있는 출구)에서 나와 바로 오른쪽 길로 들어서서 좌측에 보이는 첫번째인가 두번째 건물 3층에 '카페 쏘울언더그라운드'라는 작디 작은 라이브 카페가 있다.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사실 알 길이 없지만, 그 땐 무대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작디 작은 한켠 공간과 엠프 몇개가 전부였다. 키보드 같은 긴 악기를 세팅하기도 번거로워 보일 정도였고 무대 뒤쪽 창가의 테이블에 손님이 그냥 앉아있을 때도 있었다. 카페이기도 했으나 사실 카페라기보단 그냥 비밀 다락방, 아지트 느낌 물씬 풍기는 공간.


  사장님은 꽤나 간지나는 인물이었다. 가수 이현우를 콕 빼닮은 (사실 외모도 좀 그런 느낌이 난다) 목소리에 흔하지 않은 청자켓 청바지 검정 뾰족구두... 심지어 머리는 긴 장발. 80년대 청춘드라마의 스케치를 보는 것 같은 사장님은 굉장히 젠틀한 분이었다. (아마 목소리가 그런 이미지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추측해본다) 지금은 어떤 스타일이실지.


  여튼 그 공간을 알게 된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그 때는 꽤나 자주 갔고 그 때마다 작은 라이브 무대를 볼 수 있었다. 홍대 뮤지션들 중에서도 새로이 팀을 이루거나 틈틈이 활동하시는 분들, 요약하면 정말 신선한 (처음보는) 팀들이 대다수였지. 그 날 역시 관객(이라기보단 그냥 커피 마시러 온 손님)은 채 열 명이 안되었고, 그나마도 그날 공연의 지인들이었다. 순수하게 카페에서 시간 떼우려고 온 것은 우리 일행 서너명 뿐이었다.


  이들의 무대는 마지막이었다. 갓 스무살 남짓? 혹은 초반으로 보이는 남2여1 세명의 멤버가 자리를 잡았다. 집이 안산인데 4호선이 곧 끊길 수 있다며, 빨리 노래하고 집에 가야 한다는 오프닝 멘트는 멤버들의 귀가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농담이 아니고 실제로 꽤나 급해보였다...


  노래는 약 너댓곡으로 기억한다. 혈액형별 성격을 소재로 한 노래 세곡 정도 - 제목도 Song AB, Song B, Song A 이랬다 - 그 외에 두어곡 정도였다. 멜로디가 명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처음 들음에도 꽤나 흥얼거렸고 뭣보다 가사가 굉장히 재밌었다. 너트 풀린 나사마냥 멘트를 치다가도 노래 부를 때만큼은 진지해지는 멤버들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기타 겸 보컬의 리더로 짐작되는 친구가 특히 그러했다. 그렇게 인상적인 노래를 부르고 그들은 종종걸음으로 지하철 타러 가야 한다며 가버렸다. 밤늦게 귀가한 나는 귀가청년들의 다른 노래들이 궁금해졌고, 말미에 흘리듯 남긴 싸이월드 클럽 정보를 검색해 이들의 클럽에 가입했다. 그룹 이름은 '참깨와 솜사탕'이었고, 자체 제작한 미니 앨범이 음원 서비스되고 있었다. (현재는 서비스 중단)


참깨와 솜사탕 미니 앨범. 현재는 음원 서비스 중단

들어본 기억으론 레코딩 퀄리티가 썩 좋지 못했다.

아마 다시 녹음한 후에 새 버전을 서비스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Song B (당시 영상은 아닙니다)



  사실 이후 꽤나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고, 가입했던 싸이월드 계정도 삭제해버려 이 멤버들을 기억하지 못했다. 헌데 최근 우연히 이들의 이름을 다시 보았다. 놀랐다. 내가 근무했던 레이블과 정식으로 계약을 한 것이다. 자세한 속사정은 알 길이 없지만, 2-3년만에 다시 본 그들은 (여전히 풋풋하지만) 보다 멀끔한 프로 뮤지션으로 발돋움하려고 하고 있었다. 이미 레이블 10주년 공연에도 참여했고 기념 앨범 및 최근 발매된 '김하늘 & 파스텔뮤직 컴필레이션'의 수록곡이 타이틀곡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곡명은 '공놀이'다.



  사실 별거 아닌데, 생각해보면 우연이라고 할지 인연이라 할지 그런게 있긴 한가보다. 저들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우연히 찾아간 작디 작은 공간에서 본 어린 친구들이 내가 일했던 레이블과 계약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뭐 그런 일이 흔한 것이 역시나 홍대공간이긴 한데... 새삼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뭐 그렇다. 풋풋함과 아마추어 사이에서 좀 더 다듬어야 하겠지만 그 때 처음 듣고 느꼈던 감성이 평범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재미진 가사가 20대에 꼭 어필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참깨와 솜사탕의 건투를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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