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 :: 2012/12/26]
잠에서 깨자마자 전날 찾아놓은 울월스 매장으로 향했다. 휴대폰을 개통하기 위해서다. 백팩커에서 걸어서 5분 거리, 타운홀 역 바로 앞에 있었다. 시드니 시티 중심을 꿰찬, 그야말로 노른자위 땅. 임대료 아마 엄청 비쌀거야..
울월스(Woolworths)는 콜스(Coles)와 더불어 호주의 2대 대형 슈퍼마켓 중 하나로, 우리나라의 E마트나 홈플러스를 생각하면 된다. 케이마트(K-Mart) 같은 경우는 주로 전자제품이나 가구를 비롯한 각종 생활용품을 파는 곳이라 이 두곳과는 성격상 구분된다. 지금와서 이야기해보면 울월스가 좀더 시골 구석구석에 조그맣게 많이 있는 것 같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사실 상품 가격은 두 매장이 거의 차이가 없다. 매장별로 일정 시기마다 할인품목이 있는데, 재밌게도 콜스와 울월스는 이 할인 품목을 결코 겹치게 두지 않는다. 경쟁업체임과 동시에 상생하는 동지인 셈이다.
여튼 휴대폰을 개통하기 위해 대형 슈퍼마켓에 간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울월스의 경우 자체 모바일통신사가 있는데 이름하야 울월스 모바일(Woolworths mobile)이다. 혹은 울월스 옵터스(Woolworths Optus)라고도 하는데, 호주 대형 통신사 중 한곳인 예스 옵터스(yes optus)의 통신망을 함께 쓰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MVNO를 생각하면 빠르다. 실제 휴대폰 안테나에는 YES OPTUS라고 표기된다. (2013년 3월 현재 Optus라고 표기명이 바뀌었다)
호주 최대 통신사인 텔스트라(Telstra)나 그 다음인 옵터스, 보다폰(vodafone)을 제치고 울월스모바일을 선택한 이유는 다름 아닌 데이터통신 사용량 때문이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입국한 사람의 경우, 2년 약정(영어로는 Plan이라고 한다)으로 휴대폰을 개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비자 유효기간이 1년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워홀러나 여행자들은 일정 요금을 내고 (보통) 한달 유효기간동안 사용하는 프리페이드(Pre-paid) 말 그대로 선불 요금제를 선호한다. 통신사마다 이름은 다르지만, 제공하는 서비스나 데이터량은 엇비슷하다. 보통 데이터 500MB 제공에 통화량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500분 정도. 데이터무제한에 길들여진 나에게 500MB는 턱없이 부족했다. 요금은 통신사마다 달랐지만 보통 $30 선이었다. (텔스트라가 가장 비싸다. 대신 호주 전역 어디에서도 가장 잘 터진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보통 오지 농장으로 가는 워홀러들이 많이들 가입한다)
그러던 중 호주에 오기 전 필리핀에서 우연히 '울월스 옵터스' 프리페이드 요금제에 대해 들을 수 있었는데, 데이터 제공량이 무려 5GB에 통화량도 자사 통신사끼리 $250 타통신사와 $250 도합 $500 가량의 전화량을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타통신사에 비해 보름 더 긴 45일의 유효기간. 즉 한번 충전하면 45일동안 해당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후에는 매장 방문/혹은 인터넷을 통해 새로 충전해야 한다) 요금은 $29. 요금은 엇비슷한데 유효기간도 길고 데이터가 훨씬 많이 제공되는 울월스 모바일을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49 프리페이드 요금제의 경우 5GB 데이터에 $29의 두배 통화량을 지급한다) 실제로 이 통신사는 오픈된지 얼마 안되어 유학생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했다. 다만 서비스 가입 즉 유심칩 구매가일부 울월쓰 매장 및 지정된 곳에서만 가능해 타 통신사에 비해 찾아가기가 힘든 편. 일부 중소도시의 경우 유심을 구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들었다. 다행히 나같은 경우 큰 도시인 시드니에 있었으니 그러한 불편함은 없었다.
출처: 울월스 모바일 홈페이지 ( http://www.woolworthsmobile.com.au/ )
매장으로 향하며 했던 유일한 걱정은 혹시라도 매장이 문을 열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거였다. 크리스마스 다음날은 12월 26일은 호주에 1년에 한번 있는 박싱 데이(Boxing Day)인데, 전국 모든 종류의 상점들이 거진 반값이 물건을 파는 이벤트 데이로서 영연방 국가(UK,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 이루어지는 걸로 알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보내는 호주인들이니, 다음날 박싱 데이는 가족 뿐 아니라 재회한 연인들로도 붐볐다. 정말 붐볐다. 인근 소도시에서 모조리 시드니로 몰려온 탓이다. 그 때문에 혹시라도 울월스 매장이 쉬거나 하는 사태가 벌어질까 걱정이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좀 바보같은 걱정인데, 휴일이다보니 쉴수도 있겠다 싶어서 --; 그렇게 된다면 집을 구하는데 있어 큰 장애가 되니까 문제였다. 가끔 카카오톡 아이디를 남기고 문의하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카톡으로나마 연락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집을 문의할 방법이 없었다. 영락없이 하루를 아무 의미없이 버릴 수도 있었다. 그만큼 이날의 나는 작은 여유가 없었다. 일단 집/휴대폰부터 해결을 보고 나야 한숨을 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붐비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매장에 가니 다행히 오픈한 채였다. 3층으로 올라가니 (매장이 총 세개 층이다) 울월스 모바일 지점이 작게 자리하고 있었다. 군말없이 마이크로 유심 및 $29 프리페이드 요금제에 가입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심값은 $2. 도합 $31을 지불하니 영수증과 함께 유심을 건네주며 점원이 말했다. "유심을 꽂고 나면 직접 휴대전화를 활성화(Active)하고 번호를 배당받아야 해요. 555에 전화해서 영수증에 적혀 있는 Voucher Number를 입력하거나, 인터넷 홈페이지에 가서 하세요."
뒷줄에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더 묻지 않고 일단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벽돌이 된 아이폰에 유심을 밀어넣으니 안테나에 YES OPTUS라는 긴 통신사네임이 표기된다. 번호를 배당받고 활성화를 해야했다. 555에 전화를 걸었다. 첫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도무지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리스닝에 취약한데 랩하듯 말하는데다가 익숙지 않은 호주 발음에 멘붕이 찾아왔다. 안내음성이 뭐는 1번 뭐는 2번 누르라는데 뭐라는지 알아듣지도 못하겠고.. 결국 포기하고 일단 백팩으로 돌아왔다. 2차 대안인 인터넷을 통한 활성화를 위해서였다.
사실 처음부터 인터넷으로 시도하지 않은 이유는 백팩커의 인터넷 속도 때문이었다. 전날도 랩탑에 와이파이를 연결시키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던지. 걱정이 기우이길 바랐지만 그건 현실이었다. 울월스 모바일 홈페이지에 접속은 했는데, 도무지 다음으로 진행되지가 않았다. 시간이 별로 없었다. 당장 집을 알아보려면 인터넷에 올라온 번호로 전화를 해서 물어봐야 하는데. 아쉬운대로 아이폰으로 시도해보았다. 신기한게 휴대폰으로 잡은 와이파이 속도가 더 빨랐다. 휴대폰을 잡고 끙끙댄 끝, 결국 활성화를 성공할 수 있었다. 도움 준 네이버 검색창에 감사를. 절차는 생각보다 쉽고 네이버에 이미 자세히 소개된 블로그 글들이 있어 따로 설명하진 않겠다.
주소 및 연락처는 종로유학원 시드니지사의 것으로 대체했다.
(내가 집이 있을리 없잖아)
보통 호주에 처음 왔을 때 집을 구하기 전엔 에이전시나
유학원 주소를 (필요시) 이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호주의 휴대폰 전화번호는 04** - *** - *** 총 10자리다. 예전 우리나라처럼 통신사별로 따로 할당된 앞자리는 없는 것 같다. 모든 절차를 마치고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PIN NUMBER 및 각종 안내문을 실은 문자가 온다. 끝이다! 시험 삼아 문자를 나에게 보내봤는데 무사히 도착이다. 호주와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집/휴대폰 중 한가지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신나게 알아본 집주인에게 전화하며 룸쉐어를 문의하던 중, 문자메시지를 남긴 한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런데... 전화번호가 뜨지 않는다! "발신자 표시제한"으로 뜨는 게 아닌가. 당황한대로 일단 전화통화를 마치고 이게 어찌된 일인지 검색에 들어갔다. Active 할 때 내가 뭔가 잘못눌렀나 싶기도 했다. 초장부터 잘될듯 하더니 영 기분이 꺼림칙했다. 그리고 열렬한 검색 끝에 마침내 원인을 알아낼 수 있었다. 위의 사진을 보면 계정 세부사항에 'Caller ID'라는 부분이 있는데, 이게 바로 '발신자 번호 표시'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활성화 과정 중에 나는 Caller ID가 뭔지 알 도리가 없었고 (별다른 설명도 없었다), 혹시나 YES했다가 뭔일 날까 싶어 일단 NO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그거라니 오마이갓. 어느 네이버 블로거는 친절하게 "Caller ID는 발신자 표시 관련 문항이니까 꼭 YES라고 하세요~^^"라고 하더이다. 왜 내가 보고 따라 한 블로그 글에는 저 말이 없었을까.
여튼 해결방법을 모색해보니 답은 하나였다. 온라인으론 불가하고 직접 문의전화를 통해 변경을 요청하라는 것! 난감했지만 도리가 없었다. 일단 전화를 하는 수밖에. 울월스 모바일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억세고 뭉개진 오지(Aussie; 호주인을 일컬음)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뭘 도와드릴까요(May I help you)?"
"아, 음, 그러니까, 내가 오늘 아침에 울월스에 가서 프리페이드 요금제에 가입했어요. 그리고 인터넷으로 활성화 했어요.(Ah, I went to woolworths store located in Town Hall, and joined woolworths mobile today morning, and I did active by Internet.)
"네."
"아, 어, 음... 근데 액티브를 하면서 실수를 했어요. Caller ID를 NO라고 표시했어요. 이걸 YES로 바꿔주세요. (Mmm, yeah, so, when I did active by internet, I made a mistake. I checked NO about Caller ID question. Well, so, I'd like to change it into YES.)
"fjaklteq;avakvalla.... hang on."
뭐라뭐라 길게 말하더니 기다리라고 하며 엘리제를 위하여 안내벨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잠깐만 기다리라니 기다려야지. 그런데 그게 거의 5분이 넘어도 돌아오지 않는 거였다 --; 이게 날 엿먹이려는건가부터 전화를 끊고 다시 요청해볼까 아님 어디 화장실이라도 갔나 원래 오래 걸리나 온갖 생각이 다 드는 시간이었다. 좀 짜증도 났고. 세번 고민하고 다시 걸어야겠다 싶어 끊으려는 찰나 노래가 끝나고 다시금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늦어서 미안해요. 다 됐어요. 이제 누가 전화했는지 번호를 체크할 수 있어요." (이런 내용이었다...--)
"오 정말정말 고마워요."
아침에 일어나 울월스 매장을 가고 Caller ID를 변경하기까지 똥줄이 타는 순간이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별거 아닌 사소한건데, 1)낯선 땅 그것도 서구인들이 사는 곳 2)아는 사람 하나없는 공간 / 이 두가지 이유 때문에 그 당시에는 정말 많이 쪼그라들어 있었다. 도착한지 단 하루였지만 모두 나보다 크고 덩치도 산만했다. 남자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여자들 신장이 나만하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다 생각될 정도로 (지금 생각하면 나보다 큰 애들만 눈에 보였다). 어디 도움받을 곳도 없었거니와, 전화나 계좌 등 기본적인 것들을 해결할 땐 찾은 정보를 바탕으로 나 스스로 해보자라고 결심했던 상황이었기에 사소한 실수나 놓친게 있어도 굉장히 예민하고 신경이 곤두서 있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튼 이렇게 (정말로) 한 고비 넘겼다. 이젠 진짜 맘놓고 집만 구하면 되는 거였다. 전화도 열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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